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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식일과 자유와 ‘오늘’
이름: 인천중앙교회


등록일: 2016-08-18 08:44
조회수: 1039 / 추천수: 199


  안식일 계명이 강조하는 핵심적인 주제의 하나는 인간의 구원과 자유이다. 그리고 구원과 자유의 주제는 안식일 계명이 넷째 계명으로 포함된 십계명의 전문에서부터 강조되고 있다. 이 전문에서 하나님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선포하면서(출애굽기 20장 2절) 자신을 이스라엘 자손들의 해방자로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을 자신이 해방시킨 자유인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십계명 전문의 이 같은 주장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십계명을 명령하시는 의도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부여한 구원과 자유를 더욱 견고하게 하려는 데 있다는 사실을 표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십계명의 이 같은 취지는 십계명의 모든 명령에 반영되고 있지만 그중에도 특별히 매 주간의 일곱째 날에 종이나 가축이나 심지어는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안식일 계명에서 가장 구체적으로 표명되고 있다.

십계명과 자유

출애굽 해방을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이 일차적으로 누리게 된 자유는 정치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 같은 인간의 외적인 자유였다. 그러나 인간은 외적인 자유만으로는 온전히 자유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없고 외적인 자유와 함께 도덕적 자유나 영적인 자유같은 내적인 자유가 확립되지 않으면 인간의 외적인 자유조차도 바르게 행사할 수 없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으로 주신 자유를 외적인 것에서부터 내적인 것으로까지 심화시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온전히 자유 하는 백성으로 양육하고자 하였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과 더불어 언약을 맺어 그들을 이 땅에서 자유와 구원의 하나님을 선전하기에 합당한 자신의 친백성으로 삼고자 하였기 때문이었다. 모세가 말했듯이 “여호와께서 그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다”(신명기 4장 13절).
  그런데 일부 그리스도인 중에는 십계명을 오직 은혜로써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리와는 대립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십계명은 사람이 율법적 실천으로 구원을 얻어 내는 삶의 도리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세가 “주께서 그 구속한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셨다.”(출애굽기 15장 13절 참조)고 말했듯이 십계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통해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킨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은 자유인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 주신 자유의 계명이다.

  십계명의 취지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십계명을 순종하여 출애굽의 구원과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듯이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켜 그 의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출애굽의 구원과 자유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듯이 십계명의 명령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의 길로 베풀어졌다는 것, 즉 십계명은 사람이 구원을 획득하기 위해 순종해야 하는 삶의 도리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구원의 삶을 살아 내는 삶의 도리로 사람에게 베풀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십계명이 가르치는 인간의 사회적 관계는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두 가지 관계로 요약되지만 좀 더 세분하면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물과 사람의 세 가지 관계로 요약될 수 있다. 즉 십계명은 구원받은 사람이 세 가지 인간관계에서 행사해야 하는 자유의 명령인 것이다. 십계명의 첫 부분인 1~3계명은 사람이 참 하나님 한 분만 섬기기 위해서는 거짓된 신들과 우상 숭배와 신성 모독의 정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고 두 번째 부분인 5~7계명은 불효와 살인과 간음과 같은 죄를 범하지 않고 올바른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의 의지가 사악하고 비열한 정욕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인 8~10계명은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타인의 소유를 탐하는 것 등 주로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의지가 사물의 노예로 전락하는 상황을 용납하지 말라는 것이다.

안식일 계명과 자유

그런데 넷째 계명인 안식일 계명은 앞에서 언급한 십계명의 세부분 중 어느 하나에만 포함될 수 없는 특별한 계명으로 십계명 전체의 자유 명령을 하나로 통합하고 있으며 십계명이 의도하는 인간의 자유와 구원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체적인 삶에서 현실이 되게 하고 있다. 즉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이 출애굽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부여한 자유와 구원을 공동체의 각 구성원들에게 차별 없이 보장하기 위해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머무는 객”에게까지 노역의 지배로부터 자유 하게 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출애굽기 20장 10절; 신명기 5장 14절 참조). 노예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강제적인 노역의 일상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도 노예의 신분적 표징이 되기에 충분했으며 수세대에 걸쳐 노예로 살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는 다른 무엇에서보다도 강제적인 노역에서 벗어나는 것에서 실감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은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인의 신분으로 다시 태어나는 날이었으며 이 새로 태어남은 궁극적으로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는 최종적 구원을 예표 하고 있었다.

  출애굽의 해방과 안식일 계명의 관계는 출애굽기 20장에서 소개된 안식일 계명에서는 오직 십계명의 전문을 통해서만 함축적으로 연결되고 있으며 오히려 신명기 5장의 안식일 계명에서 그 관계가 직접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15절)고 진술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 창조의 기억과 함께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자유를 얻게 된 출애굽의 기억을 유지하는 것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하는 직접적인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면 안식일 계명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안식일의 준수를 통하여 출애굽 해방의 기억을 이어 가라고 명령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첫 번째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안식일마다 출애굽을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생생히 기억함으로써 자신들이 누리는 자유의 가치를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고 자유의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의 결의를 다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출애굽의 해방을 기억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마다 하나님을 자신의 해방자로 고백함으로써 자신의 구원과 자유에 대한 자기 중심적 특권 의식을 거부하고 그 대신 사회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노동자들도 “너같이 안식하게 하라.”(신명기 5장 14절 참조)는 사회적 책임감의 명령에 더욱 헌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안식일, 사물의 지배로부터 자유 하는 날

십계명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되 거짓된 신과 거짓된 정신의 지배에서 자유롭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되 사람의 지배로부터 자유 하며, 사물과 더불어 살되 사물의 집착에서 벗어날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상당한 수준의 종교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를 누리면서도 사물의 집착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십계명은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열 번째 계명에서 거듭하여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러나 사물에 집착하게 하는 인간의 탐욕과 정욕은 금지 명령을 반복적으로 듣는다고 해서 간단히 물리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탐욕으로 말미암아 사물에 붙잡혀 사는 삶을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특별히 안식일에 육체적인 노동뿐 아니라 지성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세상에 관여하는 일체의 일을 중지하라는 안식일 계명을 주셨다. 사람들은 안식일에 하루 종일 일을 내려놓으면서 함께 탐욕을 내려놓게 되며 이로써 사물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여섯 날처럼 물질에 대한 탐욕에 사로잡혀 계속하여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는 대신에 지난날의 축복들을 회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면 사물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 랍비 헤셀은 “전체 십계명의 개요가 되는 안식일 계명이 없다면 ‘탐하지 말라’는 열째 계명은 실질적으로 무용지물이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식일, 어두운 과거로부터 자유 하는 현재적 삶의 ‘오늘’ 우리가 안식일에 일을 내려놓음으로써 세상과 사물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 한다는 것은 안식일에 시간적으로 어두운 과거와 불안한 미래에 함몰되는 대신 어제와 내일 일로부터 자유 하는 현재적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 성경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뜻에서 안식일을 하나님이 지정한 “오늘”이라 일컬어지는 날이라고 말하면서 안식일을 자유와 구원의 “오늘”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4장 7절)고 권면하였다. 즉 세상에 대한 탐욕과 집착으로 완고하게 된 마음으로는 자유의 “오늘”이라는 안식일로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어두운 과거와 불안한 미래를 안식일로 이끌고 오는 세상 일들과 세상 일들에 대한 집착과 탐욕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이 자유와 구원의 “오늘”이 되기 위해서는 일체의 과거나 미래가 망각되거나 부정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안식일 계명도 우리에게 과거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명령하고 있지 않은가? 누구의 과거에도 어둡고 부정적인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기억과 은혜의 기억은 우리를 감사와 보은의 밝은 삶으로 이끌며 어둡고 부정적인 과거라 할지라도 참된 역사적 성찰에 의해 적극적인 의미의 것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점에 있어서는 미래도 마찬가지이다. 소망과 약속의 미래는 결코 현재적 삶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지원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는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로마서 8장 24절)다고 말하면서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쓰자”(데살로니가전서 5장 8절)고 권고하였으며, 사도 베드로도 “하나님이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베드로후서 1장 4절)라고 주장했다.그래서 안식일 안식의 조건으로 제시되는 과거의 소멸이란 것은 일체의 과거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적 삶을 파괴하고 박탈하는 과거의 악한 능력 곧 우리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빚어낸 파멸과 죄책감의 온갖 업장이 소멸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의 마음속에서 어두운 과거의 기억이 정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안식일의 현재로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되어야 하는 미래는 약속과 소망의 미래가 아니라 염려와 두려움의 미래이다(마태복음 6장 25~34절 참조).

  그러면 업장의 과거는 어떻게 소멸되며 염려와 두려움의 미래는 어떻게 극복되는가? 과거의 업장은 오직 회개와 용서로만 정화되며 내일의 염려와 두려움은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들풀도 입히시는’(26, 30절 참조)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써만 극복된다. 우리의 안식일이 업장의 어제로부터 자유 하는 “오늘”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회개와 용서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만으로 ‘다이루어지는’(요한복음 19장 30절 참조) 일이 선행되어야 하며 우리의 안식일이 염려의 내일로부터 자유 하는 “오늘”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음.’이 전적으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태복음 6장 34절)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나타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진실로 히브리서 기자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4장9절)라고 말한 안식일은 업장의 과거와 염려의 미래로부터 자유한 “오늘”로 경험되는 안식일로, 시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집과 같은 날이다. 그리고 안식일 경험의 이 같은 경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겠다.”(요한복음 14장 2절 참조)고 하신 약속의 부분적인 성취로 우리에게 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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