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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일곱째 날일까? -제7일 안식일의 기원
이름: 인천중앙교회


등록일: 2016-08-18 09:42
조회수: 1252 / 추천수: 167


제7일 안식일의 기원

제7일 곧 주간의 일곱 번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제7일 안식일’의 신앙은 역사적으로 유대교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에 의하여 신봉되어 왔다. 이들은 십계명의 넷째 계명을 순종하는 차원에서 제7일을 ‘안식일’로 구별했으며 제7일 안식일의 신앙으로 자신들의 신앙적 정체성을 표명했다. 그런데 제7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신앙의 전통이 중세 교회 시대에 가톨릭교회에 의하여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전통으로 변경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원후 16세기에 중세 그리스도교를 성서적 원칙으로 개혁하려는 ‘종교 개혁’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로 중세 그리스도교의 여러 가지 비성경적인 교리와 관습들이 철폐되고 그 대신에 성경적인 교리와 제도들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칠일 안식일의 교리는 회복되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일부 소수 그리스도교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다수파 개신교회들 안에서는 종교개혁의 연장 선상에서 제칠일 안식일의 회복을 계속적으로 추진하는 대신 오히려 일요일 주일의 교리를 옹호하는 역사가 이어져 왔다.

  안식일을 주일로 변경시킨 당사자인 가톨릭교회 자체는 처음부터 안식일을 주일로 변경하는 조치가 성경의 토대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카톨릭교회의 교권에 의한 것이었다고 천명해 온 반면 개신교회 측에서는 가톨릭교회의 주일 전통을 이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주일의 전통이 신약 성경에 근거했다고 항변해왔다. 그리하여 종교 개혁 시대 이후 전체 개신교 사회 안에서 성경 원칙에 근거하여 제칠일 안식일의 회복을 촉구하는 주장과 제칠일 안식일이 일요일 주일로 변경된 조치를 옹호하는 주장이 대립해 왔다.

  그리고 제칠일 안식일 법이 변경 불가능의 법이냐 아니면 변경가능한 법이냐 하는 문제는 결국 제칠일 안식일 법이 어떤 근원의 법이냐의 문제 즉 제칠일 안식일의 법이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제정하신 창조의 명령이냐, 아니면 제칠일 안식일의 법이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특정 민족을 위해 부과된 한시적인 명령이냐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만약 안식일의 법이 인간의 자녀생산, 땅의 정복, 노동, 결혼 등에 관한 법과 같이 하나님이 창세때 인간이 소유한 천부적 본성에 기초하여 제정한 법이라면 마땅히 이 법은 모든 인간에 의해 모든 법에 우선하는 영구불변의 법으로 준수되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안식일의 법이 모세 때에 처음으로 제의적인 법으로 제정되었다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적인 죽음을 치르심으로써 다른 제의적인 율법들과 마찬가지로 폐지되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안식일법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안식일의 신적, 태고적 기원

제칠일 안식일의 신적 기원을 공격한 세력은 특정 그리스도교파들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를 자연 종교의 하나로 취급하려 했던 종교 역사학자들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들은 제칠일 안식일의 신적 기원을 반박하기 위해 안식일의 기원을 성경 밖의 출처에서 찾아내려는 학문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이러한 학문적 시도 끝에 고대 바빌로니아의 금기일(taboo days) 기원설, 고대 바빌로니아의 만월일(full moon day) 기원설, 고대 겐 부족의 제사 의식 기원설, 고대 근동 세계의 장날(market day) 기원설 같은 가설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 가설들은 하나같이 그 역사적 타당성을 제시하지 못했고 결국 안식일의 기원을 성서 밖에서 찾아내려는 학문적 노력들은 실패로 끝났다. 오늘날 대부분의 종교역사학자들은 안식일이 오직 성경에서만 기원한다는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7일의 창조 주간은 천체의 운동이나 자연의 계절적 변화에 연관된 시간 단위가 아니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고 따라서 창세기의 기록을 떠나서는 어느 곳에서도 안식일의 기원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세계 창조의 기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하나님이 6일 동안에 세계 창조의 일을 다 마치시고 그다음 날인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것이다(창세기 2장 1, 2절 참조). 여기서 ‘안식하다.’, ‘쉬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사바트’의 일차적인 의미는 ‘중지하다.’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의 일을 쉬신 것은 그가 피곤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창조 활동이 하나님보시기에 “심히 좋다.”고 하실 만큼 완벽하게 완성되어 더 이상 창조의 일을 계속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활동을 중지한 것이었다.

  6일 동안에 창조의 일을 모두 마치신 하나님은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며’ 이어서 이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창세기 2장 3절 참조). 그러면 일곱째 날을 ‘복 주었다.’는 말은 무슨 뜻이며 ‘거룩하게 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복 주었다고 할 때 그 뜻은 사람과 사물에게 열매 맺고 번영하는 생명의 능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제칠일에게 다른 날이 부여받지 못한 어떤 특별한 생명의 능력을 부여하심으로써 제칠일이 사람에게 특별한 선물의 날이 되게 하신 것이었다.그리고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의 뜻은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게 자신의 신성을 부여하여 일곱째 날을 다른 특별한 날로 ‘구별하셨다.’는 것이다. 히브리어의 기초적인 의미에서 ‘거룩함’은 ‘분리’의 뜻이 있다. 이처럼 제칠일 안식일은 하나님에 의해 복을 받고 거룩하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과 하나님의 신성을 남다르게 간직한 특별한 날이 되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20절에서 “창세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특성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안식일이야말로 그 어떤 날들과도 다르게 하나님이 “창세부터 그의 영원하신 생명의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보여 알게 하신” 특별한 날이 아닐 수 없다.

  후대에 와서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제정되었다고 말씀하셨다(마가복음 2장 27절).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삼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조치가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생명의 능력과 신성의 존재로 영화롭게 하기 위해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후대의 안식일 변경과 관련하여 특별히 강조되어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제칠일이 복되고 거룩한 안식일이 된 것이 사람들이 제칠일에게 특별한 신성을 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칠일에 자신의 신성을 부여하여 다른 날들과 다른 특별한 날로 구별하였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점이야말로 중세 그리스도 교회가 일요일을 주일로 구별한 것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안식일의 법을 창세적 명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창세기 2장 2, 3절에서 하나님이 제칠일에 안식하시고 그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도 이 기사를 간과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여기서 안식일의 준수를 위한 구체적인 규정을 명령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제칠일에 안식하시고 그날을 복 주고 거룩하게 구별하신 것 자체로는 안식일법의 제정이라고 볼 수 없고 안식일법이 제정된 것은 모세 때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만약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태초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제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지키지도 않는 안식일이 어떻게 “사람을 위하여” 축복을 끼칠 수가 있을 것인가? 그리고 창세기 2장 2, 3절에 안식일 준수의 구체적인 명령이 없다고 지적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위하여” 말보다 더 직접적인 모범으로 아담에게 안식일의 규범을 가르치셨다. “피곤치 아니하시”(이사야 40장 28절)는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일을 ‘중지하시고’(창세기 2장 2절 참조) ‘쉬신’(출애굽기 20장 11절) 것은 전적으로 아담에게 안식일 준수의 모본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창세기 1장 27절 참조)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6일 동안에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담에게 일곱째 날에 쉬시는 모습을 보여 주신 후 자신의 “형상”인 아담이 자신의 모범을 따를 것을 기대하셨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은 그 무엇에서보다도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일상생활 곧 일하고 쉬는 삶의 방식에서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세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그의 모든 길로 행하는”(신명기 10장 12절 참조) 것이므로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여 주소서”(출애굽기 33장 13절 참조)라고 기도하였다. 당연히 아담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모본을 따라 일곱째 날을 자신에게 영적인 축복이 되는 거룩한 용도로 구별했으며 “사람을 위하여” 제정된 안식일 준수의 전통은 그의 후손들에 의해 이어졌다.

제7일은 오직 ‘안식일’로서만 존재한다

창세기 1장에서 창조 주간의 6일은 모두 창조 사건의 하나하나에 연결되어 있다. 첫째 날에는 빛이 창조되었고 둘째 날에는 궁창이 창조되었다. 그런데 일곱째 날에는 무엇이 창조되었는가? 창세기 2장 2, 3절에 따르면 일곱째 날에 하나님의 “안식”이 창조되었다. 일곱째 날은 하나님의 안식의 날이 되어야 하는 오직 한 가지 목적으로 창조된 날이다. 일곱째 날이 안식일이고 안식일이 일곱째 날이다. 그리고 일곱째 날과 안식일의 이 같은 결합은 하나님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심으로써 일곱째 날과 안식일이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짝지어 준 것은 사람이 나누지 못하는’(마가복음 10장8, 9절 참조) 것이다.

만약 제7일과 안식일이 분리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제7일이 하나님의 창조 주간에서 설 자리를 상실하게 된다. 제7일이 창조 주간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되면 무슨 일이 따라오는가? 창조 주간은 더 이상 7일의 주간이 아니고 6일의 주간이 된다. 하나님의 7일 주간이 6일 주간으로 변경된다. 그러면 6일 주간은 무엇인가?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근거한 6진법의 토대이다. 7일의 창조 주간이 변경됨으로써 창세기적 시간의 질서에 일대 변고 즉 다니엘 7장 25절에서 불신의 일로 경고된 ‘때와 법을 고치는’ 일을 연상케 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제7일은 비록 창조의 사건에 직접적으로는 관계되지 않았으나 하나님에 의해 안식일과 결합되면서 단순히 창조 주간의 한 날로 추가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위상의 날로 높여졌다. 창조 주간의 목적이요 정상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 뿐 아니라 창조 주간의 핵심적인 날이 되었다. 창조 주간의 7일중 오직 제7일만이 안식일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갖게 되었고 다른 날들은 모두 ‘안식 후 첫째 날’, ‘안식 후 둘째 날’등의 형태로 오직 제7일 안식일의 부차적인 날짜로만 일컬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중세 그리스도교에 의해 첫째날이 안식일로 변경된 이후에는 어떤 일이 뒤따르게 되었는가? 제7일만 창세기적 의미와 기능을 상실한 쓸모없는 날로 전락되었을 뿐 아니라 제7일을 포함한 창조 주간의 모든 날이 창세기적 기원을 가진 자신들의 명칭을 상실하고 이교의 성신(星神)들을 따라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토요일 등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창세기의 날들에 창씨개명의 치욕을 안기게 된 것이다. 창세기적 시간 질서가 이렇게 무너짐으로써 일어나는 재난이 어찌 이러한 일들에 그쳤겠는가? 하나님이 인간을 복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통로로 삼았던 제칠일이 이렇듯 버림을 받았는데 이날을 통해 약속된 인간의 복되고 거룩한 삶인들 어찌 온전하게 영위될 수 있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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