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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쁨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이름: 인천중앙교회


등록일: 2011-07-07 23:15
조회수: 1558 / 추천수: 167


(퍼온글) 기쁨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빌립보서에는 기쁨이라는 단어가 명사나 동사로 16회나 출현하고 있다. 그러나 빌립보서를 통해 바울이 권면하는 기쁨은 결코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감성으로 포장된 피상적인 기쁨이 아니라는 것이 이 편지를 진지하게 읽어보면 금새 드러나게 된다.
  
우선 바울은 이 편지를 로마의 감옥에서 쓰고 있다. 그는 팔자가 좋고 안락한 상황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몸이 자유롭지 못하고 가이사의 마지막 재판에서 어쩌면 사형선고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쓰고 있는 것이다. 감옥이 빼앗지 못하고 그의 손과 발을 얽매는 차꼬도 맬수 없는 기쁨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빌립보서 2:17에 보면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고백한다. 자신이 빌립보 교회와 성도들의 믿음의 진보와 그들을 섬기는 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희생을 할지라도 기뻐하겠다는 것이다. 바울은 어떤 힘든 섬김도 기쁨으로 감당하고, 희생을 하더라도 기쁨으로 희생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고난을 감수하더라도 기쁨으로 고난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불평하며 고난을 감수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고난도 손상하지 못하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그래서 바울은 빌1:29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기독교 교회사에는 기쁨으로 고난도 감수하고 기쁨으로 박해도 받고 기쁨으로 순교한 영웅들이 가득하다. 나는 기쁨으로 목회하지 않은 목회자, 기쁨으로 선교하지 않은 선교사들중 진정한 성령의 열매를 맺은 지도자들을 알지 못한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고,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속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존 파이퍼가 “기독교 희락주의”(Christian Hedonism)를 주창한 것을 온 마음으로 지지한다.
  
무더운 여름, 예수님 때문에 그가 우리에게 선물한 복음 때문에 가슴 터질 것 같은 기쁨으로 이웃을 섬기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과 동역자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힘들어 죽고, 배고파 죽고, 아파 죽고, 슬퍼 죽고, 외로워 죽고, 병들어 죽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만이라도 기뻐 죽는 모습을 보고 싶다. 기뻐 죽는 사람의 시체는 때깔도 다르다는 것을 아름다운 죽음으로 증명하는 영웅들의 출현을 기다린다. (이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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